발루 이에르 (Balu Iyer), ICA 아시아태평양 지역 사무총장
코로나19 대유행이 한창이던 2020년, 한 협동조합 조합원이 저에게 이메일을 보내왔습니다. “코로나 사태는 우리가 같은 집에 살고 있으며, 개인으로서 취약한 동시에 집단적으로 상호의존적임을 일깨워 줍니다. 지금 협동은 그 어느 때보다 더 중요합니다. 우리는 함께할 때만 극복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 사태는 장기적 지속성보다 단기적 이익을 중시할 경우 어떤 고통이 따르는지 생생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시장중심 모델에 의존할 경우 불평등이 심화되고 ‘사회적 자본’과 시민의 삶이 후퇴한다는 사실도 극명하게 드러났습니다. 또한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는 실물경제의 중요성, 그리고 실물경제 속 협동조합의 역할도 드러나고 있습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협동조합들은 조합원과 커뮤니티를 적극 지원하면서 이러한 사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보여줬습니다.
팔레스타인 농업협동조합연합회는 조합원들의 채소를 기부받아 락다운이 시행된 지역에 나눠줬습니다. 필리핀의 협동조합들은 코로나 사태에 대처하기 위한 전국적 모금 캠페인을 시작했고, 협동조합개발기금 (Cooperative Development Fund) 을 활용해 노인 등 커뮤니티의 취약계층을 지원했습니다. 인도 농민비료협동조합은 코로나19 확산을 억제하기 위해 사회적 거리두기, 위생수칙, 건강한 식단, 마스크 착용을 통한 예방 등을 강조하는 인식제고 캠페인을 주도적으로 펼쳤습니다.
우리는 코로나19 대유행 외에도 기후변화, 소득 및 자산 불평등 심화, 일의 미래와 같은 과제들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은 이러한 과제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을까요? 필리핀, 이란, 아세안협력기구 회원국의 회원 협동조합들과의 대화에서는 글로벌 공급망의 취약성에 대한 대안으로 로컬 공급망 활용의 중요성, 그리고 장기적 가치를 위한 삶과 조직화의 대안적 방식 발견의 필요성이 강조되었습니다. 또한 신뢰 강화, 사회정의 이슈에 대한 인식제고, 디지털 송금 및 보편적 건강보험에 대한 접근성, 일하고 관계 맺는 방식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기술도입 촉진의 필요성도 제기되었습니다.
이러한 논의 과정에서 협동조합 원칙의 적용 및 실천에 관한 몇 가지 문제와 일관성 부족도 지적되었습니다. 협동조합들 사이에 협동보다 경쟁이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경우, 여성과 청년의 실질적 참여가 부족한 경우가 존재합니다. 특히 소규모 협동조합의 경우 정부에 대한 의존성이 지나치게 높은 문제도 있습니다. 이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정치, 법률 체계, 경제적 접근법, 개발 수준, 문화, 종교 등이 매우 다양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협동조합들의 발전 과정을 보면 이러한 사실이 잘 드러납니다. 국가가 협동조합을 규제하거나 진흥하기 위해 지배적 역할을 맡는 경우도 있고, 시민들이 아래에서부터 주도성을 보여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두 유형 모두 정부 지원의 감소, 영리부문과의 경쟁 심화라는 과제를 마주하게 됩니다.
회원 협동조합들과의 대화에서는 이러한 논의 외에도 대단히 중요한 한 가지 아이디어가 제시되었습니다. 바로 협동조합 정체성에 대한 확고한 의지가 협동조합의 힘이 된다는 점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가야할 길은 분명합니다.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협동조합 이야기를 더욱 적극적으로 전달해 협동조합 운동을 성장시키고 우리의 이해당사자들과 더욱 많이 소통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협동조합 정체성에 깊이를 더하다’를 주제로 개최될 제33차 세계협동조합대회를 앞둔 지금,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협동조합들은 조합원들이 협동조합다운 실천을 바탕으로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나눌 수 있도록 도구와 자원을 제공해야 합니다. 우리 서로는 물론 협동조합 운동 바깥의 새로운 집단과 커뮤니티에 이야기를 전달하고, 이들이 협동조합 비즈니스 모델의 커다란 이점을 경험하도록 해야 합니다.
한 조합원이 말했듯, 앞으로 우리는 협동조합에 대한 열정을 불러일으키고, 사람들을 협동조합 운동에 참여시키며, 적극적으로 소통해야 합니다.